치유와 회복으로 자라는 교회

주일공동예배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것들
2026-09-15 10:41:27
청주제일
조회수   17

*말씀봉독 : 미가 6장 1절-8절

*말씀선포 :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것들

댓글

김성회장로 2026-09-16 19:13:46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참된 신앙의 삶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 아버지, 오늘 저희에게 미가 선지자의 목소리를 통해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원하시고 찾으시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화려한 제물이나 형식적인 종교적 행위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고 착각했던 저희의 무지와 교만을 고백합니다. 겉으로는 경건한 척하면서도 체면 때문에 스스로의 허물과 연약함을 숨기고, 세상의 욕심과 갈등 속에서 살아왔던 저희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본회퍼 목사와 신학생들이 가면을 벗고 무릎을 꿇었듯, 저희 역시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연약함을 고백하고 서로를 위해 눈물로 기도하는 온전한 공동체가 되게 하옵소서. ​역사를 공의로 이끄시는 주님, 출애굽의 은혜를 잊고 당장의 잘 먹고 잘사는 현실에만 매몰되어 불의와 탐욕을 저질렀던 이스라엘의 모습이 바로 오늘 저희의 모습임을 회개합니다. 미움과 폭력으로 얼룩진 이 세상 속에서 저희 그리스도인들이 먼저 깨어있게 하시고, 세상과 타협하지 아니하며 오직 주님의 정의를 행하게 하옵소서. ​그 정의는 단순한 주장이나 힘의 논리가 아니라, 자비와 긍휼을 베푸는 '헤세드'의 사랑이자 겸손함이어야 함을 마음에 새깁니다. 주님의 말씀을 근거로 이웃에게 변함없는 사랑을 실천하며, 매일의 삶 속에서 겸손히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입술로는 주기도문을 외우면서도 삶으로는 내 뜻과 물질을 추구했던 위선을 내려놓습니다. 예배당 안에서만의 신앙에 머물지 않고, 삶의 모든 자리와 일상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며 주님만을 삶의 참된 중심으로 모시게 하옵소서.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김성회장로 2026-09-16 19:15:18
[설교]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것들 (미가 6:1~8) 1. 인간의 연약함 고백과 기도 공동체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의 일화를 통해 신앙인이 마주하는 근본적인 연약함을 돌아봅니다. 인간은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완벽해질 수 없는 존재이기에, 자신의 부족함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서로를 위해 간절히 기도해 주는 공동체적 연대와 사랑이 필수적임을 강조합니다. 2. 갈등하는 시대 속 그리스도인의 성찰 9.11 테러 25주년을 맞이하는 시점에서 오늘날 증오와 갈등, 폭력으로 얼룩진 현대 사회의 모습을 조명합니다. 세상의 혼란과 불의 속에서 그리스도인은 어떠한 신앙적 자세로 바르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엄중한 영적 성찰과 시대적 책임을 촉구합니다. 3. 미가 선지자가 전하는 하나님의 본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원하시는 것은 화려하고 형식적인 제사나 겉모습뿐인 종교 행위가 아닙니다. 미가 선지자를 통해 선포된 하나님이 진정으로 찾으시는 삶의 핵심은 다음 세 가지입니다. * 정의(미쉬파트)를 행함: 세상의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사회적 공의와 바름을 실천하는 삶 * 인자(헤세드)를 사랑함: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과 자비를 온전히 깨닫고 이웃에게 베푸는 삶 * 겸손하게 하나님과 동행함: 자신의 교만을 내려놓고 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과 함께 걸어가는 삶 4. 일상에서 실천하는 참된 신앙 신앙은 예배당 안에서의 종교적 행위에만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성도는 삶의 모든 자리와 일상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며, 하나님을 삶의 참된 중심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김성회장로 2026-09-16 19:22:12
[성경 봉독] 오늘 이 시간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 말씀은 구약 성경 미가서 6장 말씀입니다. 구약 성경 1295쪽이나 96쪽에 있습니다. 미가서 6장 1절로 8절까지 말씀을 봉독해 드리겠습니다.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는 일어나서 산을 향하여 변론하여 작은 산들이 네 목소리를 듣게 하라 하셨나니 너희 산들과 땅에 견고한 지대들아, 너희는 여호와의 변론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과 변론하시며 이스라엘과 변론하실 것이라. 내 백성화 내가 무엇을 네게 행하였으며 무슨 일로 너를 괴롭게 하였느냐? 너는 내게 증언하라. 내가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해 내어 종노릇 하는 집에서 속량하였고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을 네 앞에 보냈느니라. 내 백성화 너는 모압 왕 발락이 꾀한 것과 보올의 아들 발람이 그에게 대답한 것을 기억하며 싯딤에서부터 길갈까지의 일을 기억하라. 그리하면 나 여호와가 공의롭게 행한 일을 알리라 하실 것이니라.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로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여호와께서 천천의 순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마다들을, 내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이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도입: 본회퍼 목사의 일화]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나치에 저항을 했던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님이 계십니다. 그분이 비밀로 지하에서 신학생들을 지도를 할 때에 보니까 신학생들이 서로 경건한 척하고 또 자기들의 허물을 숨기는 모습을 직시를 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본회퍼 목사님이 성경 말씀을 펴서 읽어 주었습니다. 그 성경이 야고보서 5장 16절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이 성경 말씀을 신학생들 앞에서 읽어 주고 학생들 앞에서 선생님이 무릎을 꿇고 지금 자신의 영적인 슬럼프와 그리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두려움을 솔직하게 고백을 했습니다. "형제들이여, 자네들이 보기에 위대한 목사처럼 보이는 나도 역시 매일 두려움과 싸우는 연약한 죄인입니다. 그러므로 나를 위해서도 기도해 주십시오." 선생님의 이 솔직한 고백, 무릎을 꿇고 이렇게 고백하는 거에 대해서 신학생들의 마음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그동안 체면 때문에 숨겨두었던 의심, 아픔, 허물을 서로가 고백을 하면서 끌어안고 눈물로 기도하기 시작을 했습니다. 나중에 그때 신학생이었던 사람들이 이런 고백을 남겨 놓았습니다. "가면을 벗고 서로를 위해 눈물로 기도했던 그 작은 방에서 우리 영혼을 짓누르던 모든 중압감과 마음의 병이 말끔히 치유되는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오늘 창조 두 번째 주일을 맞아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여러분 모두에게 생명의 말씀으로, 또 복음의 말씀 앞에서 우리 모두는 또 연약한 죄인들임을 고백하고 동시에 치유의 은총을 체험하는 복된 시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배경: 9.11 테러 25주년과 현대 사회의 갈등] 오늘이 9월 13일인데, 엊그제 9월 11일은 미국에서 벌어졌던 세계의 테러 사건, 9·11 사태가 벌어진 지 25주년 되는 날이었습니다. 2,977명의 사망자, 또 6,000여 명 이상의 부상자가 발생을 했고, 현재까지는 테러 사건으로서는 가장 큰 인명 피해를 유발한 그런 사건으로 기록이 되어 있는 9·11 테러 사건이 되겠습니다. 지난주에도 언급을 했던 네팔 재앙으로 사망자가 100여 명이고 실종자가 5,600여 명 정도로 파악되고 있는데, 이것보다도 더 큰 재앙이 25년 전에 미국의 한복판에서 벌어졌었다 하는 것을 우리는 어느덧 잊어버리고 있지만 이 때가 되면은 다시 기억을 되살리게 됩니다. 이 일로 말미암아 미국뿐만 아니라 미국과 우방국들, 또는 적대국들을 포함해 가지고 전 세계가 큰 충격에 빠졌던 것을 기억을 해 봅니다. 이 테러 사건은 테러리즘이 단순한 범죄 행위를 넘어선다고 하는 것, 그 결과가 전쟁에 준하는 수준의 위협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그런 큰 사건이 되었습니다. 이에 많은 역사학자들, 정치학자들은 2001년도에 있었던 9·11 테러를 구소련 붕괴 이후의 현대사에서 가장 핵심적인 사건 중에 하나로 평가를 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 사건은 서방권에서, 특히 기독교가 많은 그런 서방권에서 이슬람교를 믿는 무슬림들의 이미지가 극도로 나빠지는데 기여한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약간씩의 갈등들은 있었지만은 이슬람은 그저 중동의 신비주의적 종교 정도로만 여겼던, 딱히 광기 서린 극단주의 사상이라는 인식이 크지 않았던 그런 때였습니다. 오히려 지금 21세기지만은 20세기 냉전 시기에는 세계 강국인 미국이 공산주의를 막겠다고 하면서 반공 성향을 가지고 있는 이슬람주의자들과 협력하기도 했던 그때를 우리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빈라덴도 그렇고 알카에다 조직도 그렇고 사실은 미국과의 협력 지원을 통해 성장한 그런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라고 하는 평가를 아프게 받아들여야 되겠습니다. 이 사건 이후 25년이 되었지만은 아직도 수많은 미국 사람들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비행기 두 대가 그 높은 빌딩 두 빌딩을 연이어 폭발을 하는 그 현장이 실제로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 중계가 되지 않았습니까? 굉장한 트라우마였습니다. 또한 동영상으로 잘 볼 수 없는 그런 내용이기는 하지만은 그 높은 건물이 파괴되고 있는 도중에 건물 속에서는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으니까 그 건물에서 아래로 뛰어내린 사람들의 숫자만 해도 200여 명 정도가 되는데, 저도 그 장면을 보면서 소름이 끼치고 '저 떨어지는 사람의 심정을 우리가 어찌 헤아릴 수 있겠는가' 그것도 엄청난 트라우마로 남아 있습니다. 당시 현장 근처에 있던 시민들이나 수습을 위해서 다가갔던 수많은 구조대원들, 아직까지도 그때 마신 유가스 먼지 때문에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하는 것이죠. 그래서 9·11 테러 당일 사망자보다도 각종 후유증으로 인한 사망자가 더 많을 것이라고 하는 그런 주장도 있기도 합니다. 특별히 소방대원들, 구조대원들, FBI, 뉴욕 경찰 등 이런 분들의 순직 기록을 보면 현재도 이 일 때문에 사망자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 하는 것입니다. 생존자들에 따르면은 그 후유증으로 암이 발생하기 시작을 했는데 발생한 암의 종류만 해도 8가지 종류의 암이 발생을 했다고 하는 것이죠. 물론 미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암은 56가지에 불과하지만, 그러니까 이 9·11 테러는 지금도 그 후유증이 진행 중이다라는 그런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치매에 걸렸다든지, 알츠하이머병에 걸렸다든지, 파킨슨병에 걸렸다든지, 심지어는 자살을 한다든지 수많은 피해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2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유해 신원이 확인되지 않아서 계속 확인 중이라고 하는 그런 기록도 찾아볼 수가 있겠습니다. DNA를 판독을 하는 법의학 기술이 나날이 발전하고 있지만 여전히 희생자의 30~40% 정도의 신원이 확인이 되지 않은 상태다 하는 그런 얘기입니다. 이런 내용들을 접하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정말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르게 사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어느 쪽이 선이고 어느 쪽이 악인지, 또 선과 악 사이에서 무엇을 선택하며 살아야 하는지 당연히 고민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저는 오늘 구약 성경 선지자인 미가 선지자의 말씀을 들어 보려고 합니다. 왜냐하면은 이쪽이든 저쪽이든 양자가 서로 자신들이 정의롭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신들만 평화를 추구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신들이 더 많이 사랑한다고 주장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미가 선지자의 메시지: 하나님의 변론과 참된 삶] 오늘 미가서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변론을 하는 그런 내용이 초반부에 나와 있습니다. 이 변론이 3절부터 본격적으로 전개가 되고 있습니다. 이 변론의 말씀이라고 하지만은 사실은 미가 선지자의 신앙적인 판단이 여기에 서려 있습니다. 절규죠.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들에게 무슨 잘못을 하신 적이 있느냐, 당신들을 피곤하게 한 적이 있느냐. 물론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런 사실을 답답하게 여긴 이 미가 선지자는 4절과 5절에서 이스라엘의 지난 역사에서 벌어진 일들을 구체적으로 언급을 해 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약 성경에 보면 항상 목이 고든 백성들이라고 하는 평가를 받습니다. 교만하다는 얘기죠. 하나님 앞에서 목이 굳은 백성입니다. 구약 성경에 보면 이런 표현들이 자주 등장을 합니다. 자주 잊어버리기도 하지만 목이 굳은 백성들이기 때문에 뭔가 자신들이 어떤 자신들의 역사를 스스로 이루어낸 것처럼 착각을 하며 살아가는 경향성도 강한 민족이었습니다.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미가 선지자는 한 가지 결정적인 역사적인 사건을 제시를 합니다. 출애굽의 사건이었습니다. "내가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해 내어 종노릇 하는 집에서 속량하였고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을 네 앞에 보냈느니라." 미가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기는 이사야 선지자의 활동 시기와 겹치기는 합니다. 기원전 8세기경에 활동했던 선지자였습니다. 즉 예수님 오시기 800년 전쯤에 활동했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이 선지자들이 활동했던 시기와 출애굽 시기도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600년에서 700년 정도의 차이가 있겠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인도하심으로 출애굽을 경험을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 그때쯤 되니까 이 위대한 역사적인 사건을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를 않았다는 거예요. 그냥 현실에서 잘 먹고 잘 살면 되는 것이다 하는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물론 현실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 그것이 제대로 진행이 된다면 큰 문제가 없겠습니다마는 그런 삶이 제대로 돌아갈 수가 없는 거죠. 현실에만 몰두하면 몰두할수록 일상이 왜곡될 수밖에 없는 것 아닙습니까? 미가 선지자는 오늘 본문이 6장입니다만 본문 훨씬 앞쪽인 2장, 3장 말씀을 통해서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왜곡된 삶의 모습을 분명하게 지적을 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지적들이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오늘날 상황과 얼마나 비슷한지 우리가 판단을 해 볼 수가 있겠습니다. 2장 12절 말씀입니다. "그것을 행하는 자는 화 있을진저, 밭들을 탐하여 빼앗고 집들을 탐하여 차지하니 그들이 남자와 그의 집과 사람과 그의 산업을 강탈하도다." 빼앗고 탐하고 강탈하는 일들. 3장 23절 말씀입니다. "너희가 선을 미워하고 악을 기뻐하여 내 백성의 가죽을 벗기고 그 뼈에서 살을 뜯어 그들의 살을 먹으며 그 가죽을 벗기며 그 뼈를 꺾어 다지기를 냄비와 가마솥 가운데 담을 고기처럼 하는도다." 끔찍한 이야기입니다만 악을 행했다 하는 그런 이야기죠. 3장 11절입니다. "그들의 우두머리들은 뇌물을 위하여 재판하며 그들의 제사장들은 싹을 위하여 교훈하며 그들의 선지자는 돈을 위하여 점을 치면서도 여호와를 의뢰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시지 아니하냐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는도다." 우두머리가 뇌물을 받고 재판하고, 또 제사장들은 싹을 위해, 돈을 위해서 교훈을 하며 선지자들도 돈을 위해서 점을 치면서도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떠들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중에 계시지 않느냐, 재앙이 임하지 아니할 것이다, 이게 그들의 일상의 삶이 되었다 하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오늘날이나 2,700여 년 전 그때 이스라엘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하는 것을 확인을 해 볼 수가 있겠습니다. 우리 주변에서는 뇌물을 주고받는 일이 일상화되지 않았습니까? 어쩌면은 매사를 부정한 방식으로 접근하고 처리하려고 하는 유혹에 시달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나라를 위해 땀 흘려 일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라고 해서 구타를 하고 욕을 하고 침을 뱉고 비인간적으로 다루고 있지는 않습니까? 강대국이 자기들보다 약한 나라 대통령을 납치범들처럼 납치하는 걸 자랑스러워하지 않습니까? 이민자들을 폭력적으로 다루고 있지는 않습니까? 분명한 독립 영토를 강제적으로 소유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지는 않습니까? 구체적인 내용의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은 미가 선지자 시대나 21세기 우리 시대나 본질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서는 '내가 하나님을 믿으니 재앙이 어찌 우리에게 임하리요' 그렇게 떠들고 있다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미가 선지자는 이렇게 하나님께서 출애굽을 시키셨다 하는 말씀과 더불어서 민수기 22장, 24장에 나오는 발락과 발람 이야기까지도 거기다 포함을 시켜 놓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이스라엘을 강력하게 이끌어 주셨다라고 하는 것을 강조한 내용입니다. 이러한 일, 하나님이 강력하게 너희들을 이끌어 주신 것을 기억하면서 그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시냐, "나 여호와가 공의롭게 행한 일을 알리라"고 선지자가 외쳤다는 거예요. 공의로우신 하나님이 너희들 역사 속에서 그렇게 일을 하신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뒤집어서 표현을 해 보면 이스라엘은 공의로운 하나님을 이렇게 체험을 한 백성이면서도 왜 지금은 불의하게 살고 있느냐, 그것을 선지자가 비판하고 절규하고 있는 내용이 되겠습니다. 선지자가 볼 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잘못은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에 마음을 두기보다는 그저 외형적인 제사를 화려하게 드리고 최선을 다해서 드리면 된다고 생각한 것이었습니다. 6절에 따르면은 이스라엘 백성은 제사 지내려고 하나님 앞에 갈 때 무엇을 들고 갈까 그것이 늘 최대의 관심사였습니다. 7절에 보면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을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천천의 순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마다들을, 내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하나님께 뭘 드리지? 천천의 순양,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 내 마다들을, 내 몸의 열매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 거기에만 지극정성을 보였고 거기에만 관심이 있었다 하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들에 대해 선지자는 제사 행위보다도 더 본질적이고 중요한 게 있다 하면서 8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분류를 하면 세 가지로 분류가 되겠습니다마는 서로 연결이 되는 내용입니다. 여기서의 핵심은 정의를 행하는 것이죠. 정의를 행하는 것. 그런데 그 정의가 어떤 정의여야 되느냐, 이걸 놓치지 말라는 거예요. 정의를 행하되 인자를 사랑하라, 겸손하게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해라. 그러니까 미가 선지자가 외쳤던 이 정의에 관한 것, 정의가 핵심적인 내용이지만은 그 정의는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인자를 사랑하는 그런 정의가 돼야 되고 겸손한 정의가 돼야 된다, 이게 아주 중요한 내용으로 오늘 여기서 언급을 해 주고 있습니다. 물론 정의롭게 산다고 하는 건 쉬운 일은 아니겠습니다만 또 인자를 사랑하는 것도, 겸손히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겠습니다만 미가서는 이 세 가지를 나누어서 말한 것 같지만은 굉장히 깊이 서로 연결이 되어 있는 내용이다 하는 것을 말씀드릴 수가 있겠습니다. 그중에 '인자를 사랑한다'라고 하는 표현에 대해서 좀 우리가 확인을 해 둘 필요가 있겠습니다. 보통 인자 그러면 사람 인(人) 자에 놈 자(子) 자를 써 가지고 인자, 또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용어로, 또 사람을 가리키는 용어로 받아들일 경향성이 강합니다만 여기에서 인자는 한자로 仁慈(인자할 인, 사랑 자)로 씁니다. 히브리어로 보면 '헤세드'라는 단어를 사용하고요. 또 영어로 보면 자비라든지 자애심이라든지 동정심이라든지 연민이라든지 이게 바로 오늘 미가 선지자가 "인자를 사랑하라"고 할 때 그 인자의 의미가 되겠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자비와 긍휼을, 변함없는 사랑을 베푸는 것을 진심으로 기쁘게 여기고 소중히 여기며 살아나라 하는 그 말씀이 되겠습니다. 독일어 성경에 보면 이 대목을 우리 성경과는 다르게 번역을 해 놓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사랑을 실천하며 하나님 앞에 겸손해지는 것 말고는 주님께서 당신들에게 원하는 것이 없습니다." 독일어 성경에는 정의를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번역을 해 놓았습니다. 말하자면 정의로운 삶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는 것인데, 하나님의 말씀의 처음과 끝은 인자를 사랑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겸손해야 된다 하는 그것도 함께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미가 선지자가 출애굽 사건을 기억하라고 말하는 것도 말씀을 기억하라는 것이에요. 자신의 운명을 하나님의 말씀에서 경험한 사람은 당연하게 그리고 자연스럽게 정의롭게 살려고 노력하는데, 그 정의는 인자를 사랑하는 차원의 정의요, 겸손한 차원의 정의가 된다, 이게 바로 미가 선지자의 말씀이 위대한 선지서가 되는 이유가 되겠습니다. [반(反) 주기도문 묵상] 제가 작년 7월 달에 설교에서 이런 내용을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남미 한 성당에 주기도문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는데, 그 주기도문이 아니라 '반(反) 주기도문'이라 할 수 있는 그런 내용이 기록되어 있었다 하는 것이죠. 맛을 잃어가는 소금, 빛을 잃어가는 빛들 그리스도인들에게 영적인 도전을 주는 그런 내용으로 파악이 됩니다. 한번 들어 보시기를 바랍니다. 하늘에 계신이라고 하지 말라, 세상 일에만 빠져 있으면서. 우리라고 하지 말라, 너 혼자만 생각하며 살아가면서. 아버지여 하지 말라, 아들딸로서 살지 않으면서.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하지 말라, 자기 이름을 빛내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면서. 나라가 임하시오며 하지 말라, 물질만능의 나라를 원하면서.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하지 말라, 내 뜻대로 되기를 원하면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옵고 하지 말라, 가난한 이웃을 모른 체하면서.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하지 말라, 누구에겐가 아직도 분노를 품고 있으면서.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하지 말라, 스스로 죄지을 기회를 찾아다니면서.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하지 말라, 악을 보고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으면서. 아멘 하지 말라, 주기도문의 기도를 진정 나의 기도로 드리지 않으면서. ​[결론: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우리에게 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깊이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화려한 예배나 겉모습뿐인 종교적 행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고 겸손하게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삶,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오늘 이 시대에 우리에게 찾으시는 참된 성도의 모습입니다. 우리의 일상 속에서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며 하나님을 삶의 참된 중심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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